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인생의 원형 교차로

+ Autobahn, Germany

유럽의 교차로는 신호등이 없는 원형 교차로가 대부분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도입하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원형 교차로를 처음 접하는 운전자는 당황하게 됩니다. 누가 신호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아서 흐름에 따라 서로 양보하고 순서를 따라 진입하고 빠져나가야 합니다. 차들이 막 몰려들어 진입하고 빠져나가는 데, 전반적인 교통흐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면 사고가 나기 십상입니다.

 


아.. 그게 처음에는 참 적응이 안 되더라구. 보통 시내에서 운전을 하게 되면 그냥 앞 차를 따라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게 되잖아. 좌회전을 하거나 우회전을 해야 할 때는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방향을 보면서 가는데, 계속 직진할 때가 문제야. 운전에 집중하지 않으면, 그냥 앞 차 따라가다 원형 교차로에서 일단 멈춰야 되는 데, 못 멈추고 앞 차를 그냥 따라 들어가게 될 때가 있어. 다른 진입로에서 진입하는 차들이 있는지 살펴야 되는 데 말이야.


일반적인 신호등 교차로에서는 신호에 따라가고 서고 하면 됩니다. 그러나 원형 교차로에서는 먼저 진입한 차가 우선권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각 진입로에 진입한 순서대로 우선권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원형 교차로가 나타나면 일단 멈춰 서, 교차로를 돌고 있는 차가 있는지 없는지 먼저 살핀 뒤, 다음으로 이미 진입해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진입로의 차들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차로 상에 차가 없고, 진입순서에 따라 내 차례가 오면 천천히 교차로에 진입하면 됩니다. 그러나 신호등 교차로에서처럼 아무 생각 없이 앞차를 따라가다가는, 교차로에서 사고가 나기 쉽습니다.앞 차는 교차로가 비어있어서 바로 진입했으나, 그 사이에 다른 차들이 옆 교차로에서 진입해서 뒤따라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에 생각 없이 앞 차를 따라 교차로에 들어섰다가는, 다음 차례로 바로 진입해서 들어오는 옆 진입로의 진행 차량과 충돌을 할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운전이 길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그냥 손이 운전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 머리로는 딴 생각을 하면서 그냥 교통흐름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운전을 하는 거지. 그러다 신호등이 나오면 서고 가고를 하면 되는 데, 원형 교차로에서는 누가 신호를 주지 않는 거야. 그러니까 맹목적으로 따라가다가는 큰일이 나는 거지. 신호등 교차로처럼 순서를 정해주지 않는 거야. 운전자들끼리 규칙에 따라 알아서 들어가고 빠져나가라는 건대, 이게 운전을 능동적으로 하지 않으면 깜빡 사고가 날 수 있는 거거든. 그런데 신호등 교차로에 익숙해져 있어서 적응이 잘 안되더라구. 운전습관이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앞 차 따라가다, 위험한 순간을 자주 맞닥뜨리게 되니까 긴장이 확 되더라구.


인생의 교차로는 어떨까요? 원형 교차로가 더 많을까요? 신호등 교차로가 더 많을까요? 어려서는 어른들의 신호에 따라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됩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나서는 누가 신호를 주지 않습니다. 수없이 많은 원형 교차로가 나타나고, 우리는 주위를 살피며 신중하게 진입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원형 교차로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무 생각 없이 교차로에 진입했다가 큰 사고를 겪게 됩니다. 그렇다고 마냥 진입을 미루고 있을 수 만도 없습니다. 뒤에서 기다리는 차들이 있으니까요.

 


원형 교차로를 너무 의식하게 되니까 진입을 주저하게 되는 거야. 순서를 놓치기도 하고, 그런데 그러면 뒤에서 빵빵거려. 물론 유럽 사람들이 대체로 느긋해서 다급하게 굴지는 않는데. 한국 같으면 난리 났을 상황이지. 진입하는 순간에는 용기가 필요해. 탁 치고 나가야 교차로에 있는 차들도 브레이크를 조정할 수 있거든. 그런데 쭈뼛쭈뼛 대면 서로 곤란해지는 거야. 게다가 일단 원형 교차로에 들어선 차는 설 수가 없어. 차들이 계속 진입하니까. 어쨌든 계속 돌아야 하는 거야. 그러니 새로 진입하는 차는 의사결정을 분명하게 해줘야 해. 일단 들어서기로 했으면 주저하지 말고 원형 교차로에 진입해야 하고.


선택을 하기 전에는 주변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냉정해야 합니다. 떠밀려서 잘못 들어섰다간, 돌고 있는 차를 들이박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갈 길 급한 사람들은 자꾸 선택을 재촉합니다. 그럴수록 사람은 긴장하게 되고 어쩔 줄 몰라 합니다. 하지만 나의 길입니다. 그리고 사고가 나면 재촉하는 사람들이 책임져 줄 리도 만무합니다.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진행 방향을 파악하면서 갈 때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교차로에서 어디로 빠져나가야 할지를 대충은 알고 가니까요. 그러나 길을 잃었거나, 방향을 잘 모르고 그냥 따라갈 때에는, 나타나는 교차로마다 당혹스러워집니다.

 


지난번 여행 때는 네비게이션이 망가져서 지도를 보고 다녔어. 그때도 유럽은 대부분 원형 교차로였는데, 어쨌든 지도를 보고 가니까, 지명이나 진출입로의 번호 등도 어느 정도 숙지를 한 상태여서 교차로에서 빠져나가는 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 그런데 이번에는 성능 좋은 네비게이션을 두 종류나 달고 다녔거든. 그러니 미리 방향을 숙지할 필요가 없었지. 네비게이션이 가라는 데로 가면 되니까. 그러다 보니 원형 교차로에서 엄청 헷갈리는 거야. 네비게이션만 봐서는 어느 출구로 빠져나가야 할지 눈에 빨리 들어오지 않더라구.


인생의 맹목성은 따라가면 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리더와 시스템을 쫓습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따라가기만 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낸 누군가를 리더로 삼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시스템에 속하려고 합니다. 리더의 지시대로 하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원형 교차로에는 두 대가 동시에 진입할 수가 없습니다. 앞 차를 붙어서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매우 한가한 교차로가 아닌 이상, 차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중심가의 교차로는 더더욱 두 대가 동시에 진입할 수가 없습니다. 신호등 교차로는 신호가 바뀔 것 같아 바로 붙어서 따라가도, 비록 꼬리를 물었다고 욕을 먹을지언정, 사고가 날 위험이 크지는 않습니다. 다른 차들이 피해 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원형 교차로에서는 그냥 앞 차에 따라붙었다간, 바로 진입한 옆 진입로의 차와 원형 교차로를 돌고 있는 다른 자동차를 그대로 들이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100% 사고로 이어집니다.


인생의 원형 교차로는 한가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건너가야 할 교차로는 대부분 수많은 선택과 인생들이 교차하는 매우 복잡한 교차로입니다. 당신의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앞 차는 익숙하게 빠져나가는 교차로라 할지라도, 바짝 뒤따르는 당신은 자신만의 감각으로 빠져나가야 합니다. 적어도 교차로에서만큼은 그들의 지도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판단은 나의 몫이고 선택도 나의 몫입니다. 그럴거면 네비게이션이 뭔 필요가 있겠습니까? 정작 중요한 선택의 길목에서는 쓸모가 없는 데 말이죠.

 


그때마다 한스가 옆에서 체크를 해 주었어.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은 계속 주위를 살피면서 방향과 진출입로를 체크해 줄 수 있지. 교차로에서는 네비게이션 보다 사람이 더 낫더라구.


동승자가 필요합니다. 인생의 원형 교차로를 잘 빠져나가려면, 앞서가는 롤 모델이나 리더가 아니라, 인생의 룰과 표지를 잘 읽을 수 있는 베테랑 동승자가 필요합니다. 운전을 할 줄 모르거나, 같은 초보운전자라면 꽝입니다. 쓸모가 없을 뿐만 아니라 방해가 됩니다. 베테랑 동승자는 원형 교차로의 방식에 익숙합니다. 그리고 다른 진입로의 차들과 직관적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운전자는 놓치기 쉬운 진출입로의 싸인들을 먼저 읽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승자의 도움을 얻으려면 그에게 자신의 목적지를 명확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확한 진출입로를 체크해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네비게이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목적지의 명칭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더라도, 대충 인근 도시나 방향이라도 알아야 합니다. 어쨌든 목적지가 있어야 방향을 정할 수 있으니까요. 일단 그냥 출발하고 보자 해서는 원형 교차로를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신호등 교차로라면 가다 서다 하며 틈틈이 지도를 볼 수도 있고, 선채로 주변을 확인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형 교차로는 빠른 선택을 요구합니다. 뒤에서 차들이 밀려들 뿐만 아니라, 마냥 머뭇거리다가는 진입 타이밍을 계속 놓치게 되니까요. 빠른 선택은 명확한 목표에서 나옵니다. ‘이 산이 아닌가벼’하고 다시 돌아올지언정 일단 목표는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최소한 돌아올 수라도 있습니다. 목표가 분명하지 않은 채로 원형 교차로에 진입하면, 계속 원형 교차로를 돌아야 합니다. 물론 이건 원형 교차로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간혹 출구를 놓치는 경우가 있어. 그럴 때는 원형 교차로가 좋긴 하더라. 계속 돌면서 다시 출구를 찾으면 되니까. 신호등 교차로면 멀리 돌아서 좌회전, 우회전, 유턴을 해야 할 텐데 말이야.


그러나 목표 없이 시작된 여정에서 금방 목표를 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의 원형 교차로에 갇혀 계속 돌게 되는 겁니다. 어디로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계속 돌고 도는 겁니다. 목표가 명확한 사람은 돌아도 좋습니다. 출구를 놓쳤더라도 한 바퀴만 돌면 다시 출구를 찾을 수 있고, 정확한 출구를 찾기 위해 몇 바퀴를 돌아도 괜찮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원형 교차로가 편리합니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쫓아만 다니는 사람에게는 원형 교차로는 당혹 그 자체 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신호등이 점점 사라져 가는 거야. 아니 오히려 신호등을 따라왔다가 엉뚱한 곳에 도착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지. 네비게이션의 목적지가 ‘행복’, 이렇게 입력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도착한 곳은 ‘지옥’인 경우가 있는 거야. 그것으로 끝이 아니야. 입력했다고 끝이 아니라고. 수없이 나타나는 인생의 원형 교차로에서 잘 들어가고 잘 빠져나오려면 네비게이션만 의존해서는 안돼. 오히려 필요한 것은 옆에서 표지판을 읽어 줄 베테랑 동승자야. 예전에는 이런 역할을 해 주는 지도자(地圖者)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들 네비게이션에만 의존하다 보니 그런 지도자들이 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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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담集賢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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