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나로 산다는 것 #2

+ Autobahn, Germany

“너 꺼도 읽어보자. 한스 넌 ENTJ잖아?”
 
“열정, 비전, 객관성과 책임감을 겸비한 타고난 리더. ENTJ형에게 논쟁은 아주 흥미진진한 시간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나 열정적으로 논쟁(그들의 입장에서는 토론)을 벌이지만 결코 다른 사람의 발언 때문에 상처받지 않으며, 거꾸로 상대방이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어도 개의치 않는다. 또한 EJ형답게 그들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한다. 이런 오만함은 부하직원들의 사기와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ENTJ 유형의 사람들은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외부환경까지도 조직화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니오’라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ENTJ 유형을 지닌 사람들은 사랑을 가혹할 정도로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맞아요 책임감! 그게 저한테는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아요. 저는 책임감이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못 견뎌요. 그래서 오해를 사기도 하는 것 같아요. 책임을 지려는 행동이 사람들한테는 억압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나 봐요. 난 단지 어떻게든 책임을 지려고 했을 뿐인데..”
 
“멤버들이 왜 너의 책임감을 오해했을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게 전달이 잘 안돼서 억울해요. 다른 마음이 있는 게 아닌데..”


한스는 책임감이라는 단어에서 울컥했습니다. 책임과 관련된 행동에 소홀함이 없으려고 무리를 하는 경향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리더가 느끼는 책임감은 때로 멤버들에게 구속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말이죠.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한스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책임” 말이야. 그런데 사람들은 책임져주기를 바라면서 또한 자유롭기를 바라지. 자유와 책임은 한 몸인 것 같지만 사실 서로 밀어내는 극단이기도 해. 책임을 강요하면 자유가 약화되고 자유를 확대하면 책임감이 떨어지지. 사람들은 자유를 원하지만 통제는 싫어해. 그런데 ENTJ와 같은 리더는 책임을 위해 자유를 일정 정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자신 스스로가 그렇게 해. 그리고 멤버들에게도 그걸 요구하지. ‘내가 책임져 줄 테니까. 너도 통제를 따라.’ 뭐 이렇게 들리는 거야. 자유와 책임, 통제는 어차피 함께 가는 거니까 멤버들도 어느 정도 수용하고 따라올 수밖에 없는데, 그 경계가 어느 지점이냔 말이야. 자유와 책임, 통제의 경계 말이야.
 
그건 언제나 자유가 통제보다 높아야 해. 최소한 51:49로 말이야. 그게 역전되는 순간, 사람들은 벗어나고 싶어 하지. 통제가 자유보다 많아지니까. 그런데 문제는 ENTJ의 시각과 목표야. 그게 너무 넓고 멀어서 다른 유형들로 하여금 현실성이 없게 느껴지거든. 그러니까 가우디처럼, 내가 죽어서까지 계속되어야 할 비전을 가지고 멤버들을 통제하려고 들면 어떻겠어? 멤버들은 당장이 급한데. ‘뭐야, 죽을 때까지 통제하겠다는 얘기네.’ 그 말은 뒤집으면 ‘죽을 때까지 너희들을 책임질게.’ 이기도 하지만, ‘죽을 때까지 내 통제를 따라.’ 이기도 해. 그러니 자유와 통제의 비율이 중요하지. 그게 자유 90에 통제 10이면 누구라도 따를 거야. 그런데 그 비율이 자유 49 : 통제 51만 되어도 아무도 따르려 들지 않겠지.


한스는 여행 중에 ‘아니오’라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멀린과 잭의 요구와 결정에 최대한 따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맡은 임무를 완수하려고 엄청난 책임감을 보였습니다. 뮤지션으로서 낯선 타지에서 하는 버스킹 공연은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식사 준비와 여러 궃은 일을 도맡아서 하는 것에 불평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책임은 오롯이 한스의 몫이었습니다. 이 여행은 한스를 위한 여행이었으니까요.


이 유형의 리더들은 그 부분을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비전이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한스의 비전입니다. ‘성가족 성당’의 비전은 오로지 가우디의 비전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팀의 일원이 됩니다. 그냥 사람이 고파서 일 수도 있고, 실력을 연마하기 위해서, 명성을 얻기 위해서, 그냥 심심해서… 성향과 유형에 따라 천차만별의 목표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ENTJ 유형의 리더 역시 자신만의 비전과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멤버들과 소통하고 동의를 얻어낼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 뜨겁게 열정을 일으켜 낸다 해도, 그것은 멤버 개개인에게 일시적이고, 또한 자기 유형의 언어로 재해석 될 뿐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이 밴드가 실적과 상관없이 ‘평생 꽁냥꽁냥’ 유지되는 게 중요할 수 있고, 누군가는 이 밴드가 ‘평생 유명해’지는 게 중요할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음악을 하면서 ‘평생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ENTJ 리더가 ‘평생’을 외치는 순간, 각 유형의 ‘평생’은 저마다 자기 유형의 언어로 재해석 되어지고, 모두 어쨌든 그 ‘평생’에 ‘일단 OK’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리더의 그 ‘평생’을 위해 ‘꽁냥꽁냥’, ‘유명’, ‘생계’를 통제하고 제한하기 시작하는 순간, ‘어! 이건 뭐지?’.. 분열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모든 유형 중에서 가장 크고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유형이 ENTJ 일 텐데, 그들은 자신의 비전에 동참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해. 그리고 그 목표를 절대 모두의 목표라고 인식하면 안 돼. 다른 유형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나의 비전에 동참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해. 모든 이들이 가우디처럼 완공하는 데 100년이 넘는 성당을 짓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니까.
 
진정한 책임이란 어쩌면, 내 목표를 이루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이에게도 헌신을 아끼지 않는 것 일 거야. ‘꽁냥꽁냥’을 원하는 멤버에게, 비록 그가 밴드를 떠났더라도 주기적으로 ‘꽁냥꽁냥’해주는 것.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멤버에게는, 그가 ‘유명’해지기 위해서라면 밴드를 떠난다고 해도 응원하고 격려해 주는 것.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멤버의 삶을 지속적으로 돌보는 것. 그들이 나의 비전에 동참하지 않더라도 말이야. 그게 책임이지. 그게 사랑이지.

 
멀린, 이제 내 팀도 아닌 멤버에게 뭣하러 책임을 져야 하나요? 이미 떠나버린 사람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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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담集賢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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