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모든 것입니다

+ Bollingen, Swiss

취리히 호숫가 볼링겐에는 카를 융이 손수 지은 성탑이 있습니다. 융은 프로이트와 결별 이후 상심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호숫가에 탑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얼마 동안 나는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그것은 방향상실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완전히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_ 카를 융 <기억, 회상, 꿈> 中


융은 프로이트를 아버지처럼 생각했습니다. 목사인 아버지가 융이 대학생 때 돌아가신 후, 융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평소 융은 아버지와의 신학적 견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목사로서 아들과도 소통하지 못하는 자신의 신학적 역량에 대해 크게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는 너를 위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까지 했습니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 말은 아버지와의 종교적 토론이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을 때 느꼈던 열등감을 되살아나게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여러 해 후에 그는 나에게, 그 당시 그의 아버지가 종교적인 딜레마를 해소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고 말했다.
 
_ 바바라 한나 <융, 그의 삶과 저작> 中

 


융은 남성 권위자와의 지적 소통을 갈망했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었을지 모르지만 프로이트를 아버지처럼 따랐지. 그 둘은 처음 만난 날 13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갈 정도로 잘 통했어.


그러나 사고형인 융은 프로이트와 감정적 교류를 원했던 게 아닙니다. 융은 프로이트와 지적 소통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아버지와는 이룰 수 없었던, 자신의 생각에 대한 ‘받아들여짐’을 프로이트로부터 얻고 싶었을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훌륭한 스승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계는 있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性이론을 도그마화하고 싶어 했어. 융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지. 물론 프로이트도 융의 주요한 관심 영역이었던 신화와 신비주의적 경향을 탐탁지 않아 했어.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프로이트의 권위적인 태도에 융이 적응할 수 없었던 거야. 프로이트는 융을 자신의 2인자로 키우고 싶어 했고 많은 권한을 주려 했지만, 융은 그가 제안한 자리와 위치가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어쩌면 이론의 차이는 또 다른 핑계였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이론을 도그마화하려는 프로이트의 태도가 융에게는 매우 권위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유대인이었고 융처럼 부유하지도 않았습니다. (융의 아내 엠마는 부유한 집의 딸이었습니다. 융은 엠마의 지원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고 프로이트는 그런 융을 종종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심지어 배를 타고 이동하는데 스승인 프로이트는 3등석을 타고 융은 1등석을 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서 빨리 학문적 업적을 이루고 싶어 했습니다. 유태인으로서의 한계와 사회적, 학문적 인정에 대한 조급함은 권위적인 태도로 보여졌을 수 있습니다. 융의 입장에서 ‘뭐 내가 굳이 그렇게까지..’, 자신의 성향을 거스르면서까지 그의 권위에 따를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결별은 미국 여행 이후 가속화되었습니다.

 

자네를 나의 장남이자 나의 후계자로 삼은 바로 그날 밤, 자네가 아버지로서의 나의 위엄을 떨어뜨린 것이 참 이상하네. 내가 자네를 그렇게 대한 것과는 반대로 자네는 그렇게 나의 권위를 빼앗은 것에 즐거워하는 듯하네.
 
내가 추종자들을 환자처럼 대한다는 주장은 확실히 터무니없네. 그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라면 이 편지에 답장할 필요도 없네. 앞으로는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려워질 것이고 더욱이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상황이 될 테니 말이지… 그래서 나는 우리의 개인적 관계를 완전히 끊을 것을 제안하네.
 
_ 융에게 보낸 프로이트의 마지막 편지 中


‘나는 우리의 개인적 관계를 완전히 끊을 것을 제안하네.’ 아들처럼 여겼던 제자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의 열등감이 느껴집니다. 융이나 프로이트나 실은 버려진 아들들입니다. 자신들의 이론을 세워가는 일은 생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나, 누군가를 수용하고 나를 넘어서도록 이끄는 현명함을 서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모두 어렸기 때문일까요? 욕구는 채워져야 하고 인정은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실현의 확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정욕구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기준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 누가 아무리 진심을 다해 인정해 주어도, 자신이 설정한 목표치를 스스로 인정할 수 없으면 다 소용이 없습니다. 권위적인 아버지를 수용하는 일, 논리가 아닌 존재로서 그를 받아들이는 일. 결국 융은 아버지의 부재를 극복하지 못한 채, 남은 생을 살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채워지지 않은 인정욕구에 주위 사람들을 부속품처럼 대하는 프로이트의 태도는 계속 동료와 제자들을 떠나가게 했습니다. 버려진 아들들, 수용되고 인정받지 못한 아들들은 계속 그렇게 자신을 고립시킵니다. 외로운 성으로 숨어 들어갈 수밖에 없고 인정에 대한 갈증은 더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은 종종 우리를 거부와 갈등의 자리로 인도하지.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어라. 무엇이든…” 요셉은 부당함 속에 십수년을 견뎌야 했어.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권위자의 요구를 따라야 했지. 심지어 단 한번 거절했는데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가야 했어. 신의 시련 중에 가장 잔혹한 시련이야. 하지만 그 시련의 끝에서야 자신을 버렸던 형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지. 그런 운명이 있어. 그런 운명의 시간들이 있어..


멀린은 융과 프로이트의 결별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이런 일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겪을 일이긴 합니다만, 멀린의 결별의 시간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그것도 ‘그가 원하는 대로 따라 준’ 결과로 인한 결별은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직관을 따랐을 뿐인데, 그럼에도 결별로 이어진다면 왜 ‘그가 원하는 대로’여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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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담集賢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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