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

+ Nice, Provence

카미노에서 막달라마리아의 은거 동굴까지, 일종의 성지순례를 마친 멀린과 일행은, 니스의 해변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편안한 디너를 즐깁니다. 피자와 파스타, 리조또에 와인도 한 병 시키고 모처럼 만에 그럴듯한 저녁식사입니다. 휴양지의 레스토랑치고는 음식도 꽤나 맛이 있습니다. 모두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고 있는데 오늘은 유럽 프로축구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있는 날입니다. 일부러 TV 중계를 해주는 레스토랑을 골랐습니다.

 

“지단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레알마드리드가 오늘 이 경기에서 유벤투스한테 이기면 챔피언스리그 2년 연속 우승이에요. 챔피언스리그 사상 최초라구요. 정말 엄청난 대기록인 거예요.”


축구팬인 한스와 잭은 흥분하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유럽 축구 클럽들 중 최강자를 가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2년 연속 우승한 팀은 없었습니다.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은 과연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명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요? 그는 레알마드리드의 선수 시절,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즌(2015-2016) 감독에 부임한지 6개월 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이번에 우승하면 선수, 감독 통산 3번째이자, 챔피언스리그 최초로 2년 연속 우승이란 엄청난 기록을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단은 정말 천재인 것 같아요. 어떻게 레알마드리드 같은 팀을 짧은 시간에 장악하고, 저런 엄청난 업적을 이룰 수가 있죠. 리더십이 장난이 아니에요”
 
“정말 엄청나구나. 지단이 어느새 그렇게 됐지?”


열정적인 축구팬이 아닌 멀린의 기억에는 월드컵에서의 지단만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중원의 사령관’으로 불리던 프랑스 축구 대표팀의 주장으로서, 지단의 리더십은 너무도 유명해서 꼭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한번쯤 들어봤을 이름입니다. ‘아트 사커’라고 불리던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지네딘 지단은 축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는 인물입니다.

 

“선수로 유명했던 스타플레이어가 감독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러니까 더 대단하죠.”


천재는 자신의 천재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여깁니다. 자신은 그냥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느 경지에 오르려면 피땀 흘리는 노력을 동반해야 하지만, 그 노력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역시 천재성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건 뭐랄까? 어쩌면 천재성의 필수 요소인지도 몰라. 좋아한다고 해서만 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야. 삶과 불리할 수 없는 일체성 같은 것이 있어. 무의식중에도 집중하게 되는.. 일종의 숙명이랄까? 그래서 나는 게으른 천재는 없다고 생각해. 그건 천재가 아니고 자질이 있을 뿐인 거야. 조용필은 노래방에 가서도 자기 노래만 부른다잖아. 그런 건 그냥 좋아한다, 열심히 노력한다를 넘어선 그냥 노래 그 자체인 거지. 학습하고 배워서 되는 게 아닌 거 같아.


염려와 두려움에 천재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떠한 안전장치를 보여주고 구축해 주어도 기어코 불안거리를 찾아냅니다. 걱정과의 혼연일체.. 그런 천재성을 우리가 하나쯤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말이죠. 그리고 무의식중에도 그렇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분야를 선택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원하는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할 텐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습관과 환경에 의해 선택 당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꼼수의 천재성’, ‘눈치의 천재성’, ‘복지부동의 천재성’, ‘염려하기의 천재성’, ‘천재적인 이간질’과 ‘천재적인 뒷담화 취재력’, ‘천재적인 부정 인식’과 ‘천재적인 무사안일’로,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어쨌든 천재성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단은 알제리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났어. 뭐 뻔한 스토리잖아. 가난한 이민자의 자녀가 놀이라고는 축구밖에 없는 환경에서, 죽어라 공만 차고 놀다가 천재성이 발휘되는 이야기. 운동선수치고 부잣집 자손은 드물지. 그렇게까지 노력할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야. 그런데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있어. 레알마드리드처럼 천재들의 공동체라면 말이야.


레알마드리드는 세계 최고의 클럽팀입니다. 특히 이 팀은 ‘갈락티고(은하수)’라고 불리는 스카우트 정책으로 유명한데, 몸값이 제일 비싼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으로 팀을 구성합니다. 그래서 지구방위대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습니다. 세계 최정상의 스타들이 모여있으니 감독은 죽어나갈 겁니다. 누가 말을 듣겠습니까? 덕분에 3년 동안 5명의 감독이 교체된 적도 있습니다. (그중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거스 히딩크도 있습니다.) 물론 성적은 몸값에 비해 형편이 없었습니다.

 


이런 팀을 정상화시키는데 큰 위력을 발휘한 사람은 무리뉴 감독이야. 무리뉴는 부임하자마자 자신에게 전권을 달라고 요구했지. 그리고 그 전권을 활용해서 뭘 했는지 알아? 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호르헤 발다노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지네딘 지단을 앉혔어. 그리고 지금은 그가 감독이 되어 드디어 레알마드리드의 전성시대가 펼쳐진 거야.


천재가 재능을 발휘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냥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선수들을 지휘하는 것은 ‘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개인전이 아닌, 축구 같은 팀 경기는 전체를 지휘하고 선수들을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천재 혼자서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스타플레이어 하나가 팀 전체의 분위기를 망치는 일이 허다합니다. 팀 경기에서 스타플레이어는 방해가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지단은 이미 본인 스스로가 세계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어. 그러니 어쩌면 스타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거야. 레알마드리드 선수들의 평에 의하면 그는 마치 공기처럼 존재했다는 거야. 일방적으로 지시만 한 것이 아니라 선수들과 함께 움직였다는 거지.

 

‘지단은 우리 플레이에 불만을 표시하거나, 한심해 하거나, 우상으로 군림하지 않았다. 체육복 입고 함께 훈련하며 개개인의 실력을 파악하고, 발전 방향에 대해 의논했다. 마치 공기(air)처럼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2005년 입단 이후 감독들에게 배운 것보다 딱 6개월 지단에게서 배운 것이 더 많다.’
 
_ 세르히로 라모스 (레알마드리드 수비수)


천재들도 배울 것을 가진, 천재들의 천재, 지단의 리더십은 공기 같았다고 선수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공기 같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걸까요? 그것은 아마도 거부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의견이 부딪히거나 반발심이 일어나거나 하는 충돌이 없는, 어느샌가 수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자연스러움. 그것은 매우 고난이도의 리더십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매우 치밀하면서도 매우 직관적인 자연스러움으로 선수들을 이끄는 것. 그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단은 단호함을 잃지 않았어. 세계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호날두를 경기 중에 교체해 버린 거야. 호날두는 부상을 제외하고는 레알마드리드에서 선수로 뛴 7년 동안 거의 교체된 적이 없었거든. 그 사실은 뒤집으면 감독들이 호날두를 어쩌지 못해왔다는 말이기도 해.


팀에는 다루기 힘든 멤버들이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멤버한테 끌려다니기 시작하면 어차피 팀은 최상의 결과를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를 자신의 리더십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은 어디서 나오고 그 지혜는 무엇입니까?

 


그건 천재들끼리만 가능한 거야. 천재는 천재를 서로 알아보는 법. 만일 그런 갈등을 겪고 있다면 둘 중 하나는 천재가 아닌 거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그럼 감독은 천재여만 한다는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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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담集賢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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