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그들은 너무 지쳤습니다

+ Marseille, Provence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전설의 유적지들이 있습니다. 막달라마리아의 유적들이 그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의 제자이자 신부인 막달라마리아는 그의 형제 마르다, 나사로와 함께 박해를 피해 배를 타고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일대의 한 지역에 피신을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 정착해서 선교활동을 하다, 한 동굴에 은거하며 남은 시간을 수도생활로 보냈다고 합니다. 막달라마리아 일행이 내린 항구 생트마리드라메르(Saintes-Maries-de-la-Mer)에서는 매년 5월이 되면 이를 기념하는 축제가 지금도 열립니다.

 


성배의 전설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데, 성배가 그리스도의 피를 담은 잔으로 신비한 능력을 가진 보물이라는 설과, 실은 막달라마리아가 예수의 아내로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는 설이 있어. 뭐 유명한 ‘다빈치 코드’식 해석에 의하면, 예수의 혈통을 낳은 막달라마리아가 이곳 프로방스 지방으로 피신을 왔다는 거야. 그리고 여기에 정착해서 예수의 후손들이 프랑스의 ‘메로빙거’왕조를 세웠다는 이야기이지. 우리나라로 치면 단군신화 같은 일종의 프랑스 건국신화야.


기독교 세계에서 예수의 직계 혈통이 세운 왕조라고 하면 매우 강력한 정통성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야 권력의 혈통이란 것이 큰 의미가 없으나, (현대에도 북한 사회나 독재정권, 아버지의 권력이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식의 후진적 권력 사회에서는 여전히 위력적이긴 합니다만) 당시 기독교 중심의 유럽 사회에서 예수의 후손이 정말 존재했다면, 막강한 정통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프랑스는 막달라마리아의 딸이자 예수의 자녀라고 주장되는 사라를 국조로 삼고, 자신들이 예수의 직계 후손임을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바티칸은 막달라마리아의 위상을 창녀로 깎아내리고, 그 자리에 성모마리아를 내세움으로써 영향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와 바티칸 사이에는 ‘카놋사의 굴욕’, ‘아비뇽 유수’ 같은 대립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파리의 중심가에는 막달라마리아를 기념하는 마들렌(막달라마리아의 프랑스식 이름) 신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와 막달라마리아의 결혼식이 가나의 혼인잔치였고,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 이후 헤게모니 싸움에서, 예수의 남성 제자들에게 견제를 당한 막달라마리아 일행이 견제를 피해 프로방스로 피신했다는 이야기도 있어. 어차피 전설이니까 뭐가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다만 무엇이 사람들을 이러한 전설로 이끌고 믿음으로 승화시켰는지 동기가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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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담集賢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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