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깔짝대지 않기를 바랄 뿐

+ Montségur, Provence

“왜 진정성으로 세워진 공동체들은 자꾸 소멸되는 걸까?”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사랑?”
 
“네 공동체의 완성은 사랑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공동체에 사랑이 부족하면 오래갈 수 없는 거 아닌가요?”
 
“그럼 너희 밴드는 사랑이 부족해서 깨어진 거야?”
 
“네? 음.. 그러니까..”


멀린은 선의로 세워진 공동체, 진정성을 기반으로 설립된 공동체들이 자꾸 소멸되는 이유를 묻고 있습니다.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의 몽세귀르를 향해 가면서, 이 첩첩산중 고지에서 초대교회와 같은 진정성을 가지고 정결하게 살려고 했던 공동체가 어찌하여 흔적도 없이 소멸되고 말았는지 의문이 듭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를 보면 성령의 감동에 의한 공동체들이 계속 새로 태어났어. 우리가 아는 카톨릭과 종교개혁을 통한 주류 교회의 흐름 이외에, 서로 어떤 연결점도 없이 오로지 성령의 감동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생겨난 교회의 역사가 2천 년에 걸쳐 지속되고 있거든. 그런데 매번 생겨나고 소멸되고 생겨나고 소멸되기를 반복하지. 왜 그럴까? 오히려 경직되고 진정성이 부족해 보이는 시스템 종교는 수 천 년을 이어오고 있는 데 말이야. 마가의 다락방에 내린 성령의 역사도 결국 디아스포라로 흩어지고, 초대교회는 박해를 받는 중에는 흥하다가 공인된 이후에는 생명력을 잃어갔지.”
 
“공동체에 사랑이 없으면 그 생명력은 계속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구성원들이 최선을 다해서 서로 사랑하면 그 공동체는 계속 생명력을 유지해 갈 수 있지 않겠어요?”
 
“너는 그런 경험이 있니?”
 
“음.. 저희 와이프와도 그런 시간을 겪어냈죠. 지금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 하구두요.”
 
“어떻게 사랑했는데?”
 
“저희도 치열하게 대립하고 싸웠죠. 하지만 결국에는 마음을 모을 수가 있었어요. 모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럼, 너희 밴드 멤버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나 보구나.”
 
“네 그랬던 것 같아요. 알려줘도 듣지 않더라구요.”
 
“그건 네가 이해한 하나님의 음성이지, 본인들이 직접 들은 건 아니잖아?”
 
“자기들도 납득했다니까요. 그런데 결국에는 그대로 하지 않더라구요.”


한스는 순종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결국 신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순종하게 되고 그 공동체는 영원할 거라는..

 

“그럼, 너의 공동체에 속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겠네?”
 
“그래야죠.”
 
“그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알려주어야지. 너는 어떻게 듣게 되었니?”
 
“음.. 그러니까 저는 저절로 깨닫게 된 것 같아요.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라. 학창시절에 어느 날 성경책을 읽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어요. 그러면서 엄청 눈물이 쏟아지고.. 암튼 교회도 다니지 않고 있었던 때였는데 말이죠.”
 
“넌 저절로 깨달았구나. 은혜가 컸네. 그런데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은혜가 주어지는 건 아니잖아. 어쨌든 멤버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음성 듣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겠네. 네 말대로면 그래야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렇죠. 그런데 어떻게 가르쳐 주죠?”


한스는 특별한 체험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신의 음성 들을 수 있는지, 가르쳐 주는 방법을 알고 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한스에게 있어 신의 음성을 듣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공동체 구성원의 조건이야. 그러니까 결국 치열한 갈등이 생겨날 때 그 판결을 신에게 가져가고, 신의 판단에 따라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건 그냥 쉬운 방법이야. 신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되니까. 하지만 개인의 정서와 실수의 권리는 원천 차단 되거나 박탈되는 거지. 그런데 신의 뜻이 갈릴 때는 어떻게 하지. 서로 다른 신의 음성을 듣게 되면 누가 들은 신의 음성을 기준으로 하지? 이 지점에서 치열한 교리 논쟁이 시작되지. 이미 지난한 교회의 역사 속에 이러한 갈등이 수많은 교파들을 만들어 냈지.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제가 들은 하나님의 음성만을 강요한 건 아니에요. 저도 멤버들이 아직 신앙이 어리고 미성숙해서 쉽게 순종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잘 알아요. 그래서 기다리고 배려해 왔죠.”
 
“그런데 왜 떠났을까?”
 
“그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저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에요? 자기가 싫다고 떠나는 데 제가 억지로 붙들 수는 없잖아요. 그건 제 책임이 아니잖아요. 저는 하나님이 공동체를 하라고 했으니까 공동체를 하면 되는 거예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다 가면 되죠.”

 


그들은 무엇이 싫어 떠났을까? 신의 음성을 따르는 게 싫었을까? 자신은 신의 음성을 잘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 싫었을까? 아니면 너를 통해 들은 신의 음성을 신뢰하지 못했을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신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을까?


한스의 공동체에서 멤버들은 다루어져야 합니다. 신의 음성을 따라, 한스가 따르는 절대성을 따라.. 신의 음성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신의 음성은 본인에게 유효한 것입니다. 프랑스를 구하고 왕을 세우라는 계시는 쟌다르크에게 유효한 것이고, 섬에 수도원을 세우라는 계시는 오베르 주교에게 유효한 것입니다. 공동체는 한스의 이상이자 한스가 받은 계시일 뿐, 그 계시와 꿈에 동참하는 멤버들은 동상이몽(同床異夢) 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의도와 목표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본인조차 모를 때가 많습니다.

 


한스가 이해하는 신의 성품은 책임과 의무, 순종과 헌신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 사람들은 성향에 따라 저마다 신의 성격을 규정짓지. 한없이 따뜻하거나, 한없이 엄격하거나, 한없이 자애롭거나, 한없이 무정하기도 하지. 그건 모두 신의 한 면일 뿐인 거야. 그러나 내가 구성하고 있지 못한 신의 캐릭터는 부정하고 싶어지지. 당황스럽고 배척하고 싶어져. 그런데 중요한 건 신은 인격(人格)이 아니라는 거야. 신이 어떻게 인격일 수가 있겠어. 인격은 인간의 것이지. 신에게는 인격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무한히 넘어서는 신격(神格)이 있는 거지. 그래야 신이지.


언젠가 멀린은 한스에게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하지 말고, ‘직관’이라고 표현을 바꿔보면 어떻겠냐고 권고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이해한 신의 뜻이 상대에게도 해당되는 것은 아닐 수 있으니, 겸손한 표현으로 ‘직관’이라고 바꿔 말해보는 것도 생각해 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직관’은 신의 음성을 넘어서는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좀 더 개인적이거나 좀 더 우주적일 수 있습니다.

 


신을 인격화(人格化) 하면 개인이 가진 인간에 대한 이해에 갇히게 돼. 그러니까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래야지’라는 인간의 도덕률, 윤리관에 신을 끼워 맞추게 되는 거야. 그 범위를 넘어서는 어떤 것도 ‘신의 뜻’일 수가 없지. 게다가 그걸,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불신자에게도 적용하지. 대표적인 게 ‘예수천당, 불신지옥’ 아니겠어? 나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야. 신을 인격으로 섬기는 신도라면 그가 믿는 인격으로서의 신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한스가 이해한 신의 인격이 헌신과 순종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걸 요구해야 한다는 거야. 기독교인에게 신은 하나뿐이니까, 그 신이 내게 명한대로 다른 사람에게도 명해야 하는 거지. 순종하라고 말이야. 그것이 인격 신의 모습이지. 자신은 천국 가려고 충성과 헌신을 하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은 선택하든지 말든지 하는 것은, 신의 뜻을 따르는 자의 태도가 아니지. 다른 사람도 신의 뜻을 따라야 천국에 갈 테니, 그들에게 선택권은 없는 거야.


음.. 무슨 소립니까 멀린? 그럼 줘 패서라도 떠나간 멤버들을 데려와서, 신의 뜻에 순종시켜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 텍스트 3,584 공백 제외
500P
집현담集賢膽
집현담集賢膽
구독자 6

0개의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새로운 알림이 없습니다.